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워터게이트 사건 (문단 편집) == 이후 == 일단 선거에서는 닉슨이 맥거번을 압살했기 때문에 민주당에서도 결과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었고 [[공화당(미국)|공화당]]과 [[민주당(미국)|민주당]]은 부통령이 대통령 자리를 승계하는 것으로 합의한다. 문제는 [[미합중국 부통령|부통령]]이었던 [[스피로 애그뉴]]가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 뇌물수수 문제로 1973년 10월 사임했고,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였던 [[제럴드 포드]]가 닉슨에 의해 부통령으로 지명되고 의회의 인준을 받아 취임한것이 73년 12월이었던 것이다. 즉 포드는 부통령이 된지 불과 8개월만에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연방법상 대통령 계승 순위 3위는 하원의장이나 공화당은 소수파여서 하원의장은 민주당이었다. 포드의 정치적 목표는 하원의장이었다. 그래서 대통령 자리를 굉장히 힘들어 했다. 재선에 실패한 것도 인기가 없는 것도 있었지만 포드 자신이 대통령직을 버거워한 것이 가장 큰 이유. 그리고 이건 그의 딸이었던 수잔 엘리자베스 포드(Susan Elizabeth Ford)도 마찬가지여서 백악관의 생활을 "뉴잉글랜드주에 있는 [[수녀원]]이 세운 사립여고 생활과 같다"라고 고백한바 있다. 참고로 [[미국]]의 사립고교는 대부분 [[가톨릭]] [[미션스쿨]]이다. 하지만 수녀원이 세운 사립고등학교는 버몬트주,메인주,뉴햄프셔주,메사추세츠주,코네티컷주,로드아일랜드주 등으로 구성된 뉴잉글랜드주에만 존재한다. 게다가 그 수녀원이 세운 사립고등학교가 가장 굉장히 엄격한 학칙과 분위기로 유명하다. 한국과 같이 학생들은 [[교복]]을 입는다.] 그리고 포드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대통령 사면'이라는 특권을 이용해 닉슨이 저질렀거나, 혹은 저질렀을거라고 추정되는 모든 범죄행위에 대해서 사면한다. 제럴드 포드의 사면 선언에는 '닉슨이 재임중 저지른 행위로 인해 기소나 재판의 가능성이 있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사회적 대화합 차원에서 사면한다'고 명시되었고 닉슨 본인도 사면을 받아들였다. 이로서 미국은 대통령이 재임 중의 사건으로 형사 기소된 적 없는 국가이며 현재에도 이는 마찬가지이다. 빌 클린턴때 이 전례가 위협당할 뻔 하긴 했지만 말이다. 결국 포드는 이게 큰 악재가 되어 자신의 재선에 실패하였다.[* 포드 본인은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1976년 대선에서 27개 주에서 승리하며 선거인단 240명을 확보하고 전국적으로 48%의 득표율을 올리며 꽤 선전했지만, 상원과 하원 에서도 민주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대통령 뿐만 아니라 의회까지 주도권을 민주당이 가져가 버렸다.] 닉슨 본인은 죽을 때까지 자신이 개입했다는 걸 부정했다.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왜냐하면 닉슨 입장에서는 대놓고 민주당 본부에 침입하여 도청기를 설치하라고 명령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이다.]] 닉슨은 재선에서 확실히 이기길 원했고, 그러길 위해서 민주당의 대통령 경선 계획에 대해 알고싶어했다. 밑에서도 설명하겠지만 대통령재선위원회 정보 수집 담당자 조지 고든 배틀 리디(George Gordon Battle Liddy, 1930 ~ 2021년 3월)[* 리디는 이 사건으로 인생 자체가 작살 났지만 말년에 평온했고 2021년 3월 향년 90세에 사망하게 된다.][[https://www.nytimes.com/2021/03/30/us/g-gordon-liddy-dead.html|관련 기사]] 는 닉슨에게 민주당의 계획을 알아낼 방법이 있다고 말했고 닉슨은 허락했다. 그러나 닉슨이 간과한 건 리디가 대놓고 민주당 본부에 침투하여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미국인들도 닉슨이 직접 지시를 내렸다고는 보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